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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칼럼] 文정부의 '진리 정치' , 한반도 펑화 해친다

오뚜기방송 2018. 4. 27.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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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윤평중 칼럼] 文 정부의 '진리 정치', 한반도 평화 친다
기사입력2018.04.27 오전 3:18
조선조 성리학자들처럼 正義 실현하고 惡 없애는 '진리 정치'를 文 정부 강행 
국민 절반인 보수는 배척하고, 對敵했던 北만 포용은 '헛꿈'
남북보다 '南·南 화해' 절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오늘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난다. 현실이 상상을 앞지르는 극적 순간이다.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 시달린 것이 몇 달 전 일이다. 지금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활짝 웃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로를 극진히 환대한다. 통 큰 '4·27 합의'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낙관론이 무한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평화와 통일을 정치의 대의(大義)로 삼는 문재인 정부의 '진리 정치'도 덩달아 강화된다.

진리 정치의 주창자들은 '정치의 목표가 진리와 정의 실현에 있다'고 믿는다. 조선 왕조의 성리학자들이 대표적이다. 현대에는 독재와 싸운 민주화 운동 정치가 진리 정치를 내면화했다. 문재인 정부는 진리 정치를 확신한다. '악의 세력'인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일망타진'하는 것을 역사의 소명으로 여긴다. 박근혜 국정원의 댓글 공작을 분쇄한 정의(正義)의 칼이 '드루킹 게이트' 앞에서는 한없이 무뎌진다. '우리 편은 항상 옳다'고 문재인 정부는 믿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평화를 앞세운 민족통일 담론이 '진리 정치'의 새 군주로 등극하는 즉위식을 보고 있다. 전쟁 반보 직전에 대화로 일변(一變)한 것이 민족통일 담론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태풍처럼 밀어닥친 민족주의적 평화 공세 앞에 일반 대중은 분단체제 해소가 임박했다고 믿게 된다. '전쟁이냐, 평화냐'의 거친 이분법으로 우리를 압박하는 민족통일 담론의 감성적 호소력이 막강하다. '한반도 新경제 지도'가 창출할 경제 특수(特需)에 대한 기대가 평화통일 담론의 호소력을 키운다.

민족통일 담론이 절대적 진리로 격상될 때 남북 국가이성(國家理性)의 대립적 본질을 성찰하는 합리적 성찰은 설 자리를 잃는다. 진리 정치는 '우리 민족끼리' 통일 한반도의 새 역사를 만들겠다고 외친다. 김정은의 핵 완전 포기가 불가능에 가까우며 북한체제가 전면적 개혁·개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경험칙(經驗則)에 입각한 신중론을 반공냉전주의라고 비난한다. 민족통일 담론에 대한 어떤 합리적 비판도 반민족적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취급한다. 진리 정치가 오히려 야만과 퇴행을 부추기는 한국 사회의 현재 모습이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획기적인 사건이다. 은근과 끈기의 문재인 식(式) 중재 외교가 빛을 발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의 미국과 김정은의 북한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을 파고들었다. 미·북, 한·미, 북·중, 북·러, 북·일 정상회담의 연쇄 나비효과로 이어지는 국제정치의 큰 판을 펼치게 만들었다.

세계에 하나 남은 '냉전의 섬' 한반도의 냉전을 해체해 모두가 상생하는 세계사적 선(善)순환의 실마리가 마련되었다. 정부 주최 행사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취재진이 몰려온 게 단적인 증거이다. 지난 24일까지 등록 취재단이 41국 2850명에 외신만 184개사 869명에 이른다. 2000년, 2007년 1, 2차 정상회담 때의 두 배다.

벌써 문재인·김정은·트럼프 세 지도자의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까지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CVID)에 합의하고 핵폐기를 최단기간에 완료할 때나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최상의 그림과 최악의 구도는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붙어있다. 남북, 미·북 정상회담이 모두 성공해도 북핵 폐기 실행은 첩첩산중의 험로다.

미국이 과거의 북핵을 인정하는 '코리아 패싱'으로 한국의 대북 종속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트럼프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간다면 한반도 전쟁 위기는 더 악화된다. 장밋빛 민족통일 담론이 이런 현실적 시나리오들을 은폐할 때 최악의 재앙이 갑자기 덮칠 수도 있다.

남북 정상의 만남을 환영하며 한반도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하지만 오늘의 회담은 "평화, 새로운 시작"을 향한 천리 길의 첫걸음일 뿐이다. 내부의 합리적 비판 세력까지 적(敵)으로 여겨 타도하려는 야만적 진리 정치가 득세할 때 남북 평화는 고사하고 남남(南南) 평화조차 요원하다. 자(自)국민의 절반인 보수를 포용하지 못하는 진보가 전쟁으로 대적했던 북한체제를 껴안겠다는 것은 백일몽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 안의 통합과 화해가 전제되지 않을 때, 역사는 언제든지 역진(逆進)할 수 있다. 제1, 2차 남북정상회담의 좌절이 증명한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남북 화해와 평화의 현장에서 문재인 정부는 우리 사회 내부의 화해와 평화도 숙고해야 마땅하다. 진보·보수의 대통합 없는 남북 평화 공존은 불가능하다. 국민을 둘로 나누는 문재인 정부의 진리 정치는 한반도 평화에 해롭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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