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순례(聖地 巡禮)
소벌도리공기적비(蘇伐都利公記蹟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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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적비는 경주시 탑동에 위치하며 최씨의 득성조이신 소벌도리공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신라개국후 三代 유리왕 9 (32)年 임진에 육촌장에게 각기 개국좌명의 공이 있다하여 사성할때 공에게 최씨를 사성하였다. 그후 법흥왕 3 (516)年 병신에 충의군에 봉 하였으며 태종무열왕 3 (656)년 병진에 문열왕에 추봉하다.
향사일은 매년 음력 8월 23일이다.
突山高墟村長蘇伐都利公記蹟碑銘 |
이 地球村(지구촌)을 에워싸고 봄하늘에 별처럼 반짝이는 어떤 부족(部族)이나 어떤 국가(國家)이고 그들에게는 반드시 창업(創業)의 시조(始祖)가 있어 광세(曠世)의 영웅(英雄)으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천이(天吏)의 위대(偉大)한 사업(事業)을 맡게 된다.
그 당시(當時)에는 신성(神聖)하고도 영이(靈異)한 일들이 일어나고 억만성상(億萬星霜)이 흐른 뒤에 이르기까지도 인간(人間)으로서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신화(神話)와 전설(傳説)이 쉴사이 없이 일어나고 양일(洋溢)해 왔던 것이다. 우리 겨레의 아득힌 옛날 진한(辰韓)에는 여섯 부족(部族)이 살고 있는 육촌(六村)이 있어 원시(原始)의 총림(叢林)을 해치고 소국가(小國家)의 살림살이를 경영(經營)하였으니 이것이 곧 진한(辰韓)의 육부(六部)였다. 특히 육촌(六村)의 하나인 돌산 고허촌장 소벌도리공(突山 高墟村長 蘇伐都利公)은 일찌기 형산(兄山)선도산(仙桃山)에 탄강(誕降)하여 육부(六部) 제조(諸祖) 중(中)에서 가장 뛰어난 어른이다.
이제부터 2054년전(二0五四年前)인 한선제(漢宣帝) 지절원년임자(地節元年壬子) 서기전69년(西記前六九年) 삼월삭일(三月朔日)에 육부(六部)의 촌장(村長)이 자제(子弟)들을 거느리고 알천(閼川)위에 함께 모여 유덕(有德)한 임금을 세워 증민(蒸民)을 다스릴 것을 결의(決議)하였다.
소벌공(蘇伐公)은 곧 높은 곳에 올라 남(南)쪽을 향(向)해 바라볼제 양산(楊山)밑 나정(蘿井)곁에 이상한 기운이 땅위에 서리고 백마(白馬)가 꿇어앉아 절을 한다. 살펴보니 말은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붉은 알 하나를 얻어 쪼개었더니 아름다운 동남(童男)이 탄생(誕生)되었다. 동천(東泉)에 목욕시켜 이름을 불구내(弗矩內)라 일컬었고 또 사람들은 이르기를 이제 천자(天子)가 탄강(誕降)하였으니 마땅히 유덕(有德)한 여군(女君)을 맞이하여야 한다하여 사량리(沙梁里) 알영정(閼英井) 계룡(鷄龍)의 좌협(左脅)에서 탄생(誕生)한 동여(童女)를 받들어 알영(閼英)이라 이름하고 남산(南山) 서편(西便) 기슭에 궁실(宮室)을 세우고 이성(二聖)을 봉양(奉養)하였다. 이성(二聖)의 나이 십삼세(十三歲)가 되던 한선제오봉원년 갑자(漢宣帝五鳳元年 甲子) (西記前五七年)에 왕(王)과 후(后)로 추대(推戴)되었으니 이것이 곧 신라시조혁거세서간(新羅始祖赫居世西干)의 개국창업(開國創業)의 역사(歷史)이다. 이같은 창업(創業)을 도운 원훈(元勳)으로서 첫째 소벌공(蘇伐公)을 꼽지 않을 수 없었으니 실로 육부(六部)의 촌장(村長)을 대표(代表)하여 이성(二聖)을 길러 성취(成就)시킨 붉은 충성은 일월(日月)과 함께 빛났었다.
삼대유리니사금구년 임진(三代儒理尼師今九年 壬辰) 봄에 육촌(六村)의 이름을 고치고 각기(各己) 사성(賜姓)함에 따라 고허촌(高墟村)은 사량부(沙梁部)로 고쳐지고 성(姓)을 崔라 하였으니 소벌공(蘇伐公)은 곧 최씨(崔氏)의 시조(始祖)로 존봉(尊奉)되었다. 최씨(崔氏)는 신라(新羅)의 일대(一代)뿐 아니라 왕려이한(王麗李韓)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명공석학(名公碩學)이 끊어지지 않아 통국(通國)의 대성(大姓)이 되었다.
소벌공(蘇伐公)은 당시(當時)에는 건국원훈(建國元勳)으로 국민(國民)에게 숭앙(崇仰)을 받았고 그 여음(與蔭)은 후손(後孫)에게 미쳐 크게 번영(繁榮)하였다.
이제 문창후고운최선생유적보존회(文昌侯孤雲崔先生遺蹟保存會)에서 금오산(金鰲山) 북록(北麓) 옛터에 빗돌을 세워 시조(始祖)의 거룩한 사적(事蹟)을 새길제 불녕(不侫)에게 글을 청(請)한다.
삼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유사(遺史)를 상고(相考)하여 서술하고 뒤에 명(銘)을 붙인다.
거룩하신 소벌촌장(蘇伐村長) 하늘의 뜻을 받아
불구내(弗矩內)를 받들어서 거서간(居西干)에 추대(推戴)하고
어린 백성(白姓) 다스리니 동방천자(東方天子) 높을세라
조수(鳥獸)는 춤을 추고 천지(天地) 또한 진동(振動)했다네
몇 천년(千年)이 흐른 오늘 감개(感慨)가 무궁토다.
선도산(仙桃山)에 봄이드니 꽃과 푸새 향기롭고
반월성(半月城)에 달밝을제 생학(笙鶴)이 내리는듯
아아 님이시어 바람차(車) 구름바퀴 때때로 굽어살펴
운운(芸芸)한 후손(後孫)에게 길이 복(福)을 내리소서.
西記 一九八六年 丙寅 九月 日
文學博士 眞城 李 家 源 謹撰
부산시 해운대구 동백섬에 위치해 있는 해운대는 동국여지승람 동래고적편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해운대를 소개하고 있다. 「해운대는 동래현의 동쪽으로 18리쯤 떨어진 곳에 있으며 산기슭이 바다 속으로 스며들어가 마치 누에머리 같이 생겼으며 동백과 두충, 그리고 소나무, 전나무 등으로 싸여 연중 사철 한 결같이 푸르르다. 남쪽으로는 대마도가 아주 가깝게 보인다. 신라시대 최 고운선생께서 이곳에 대를 쌓고 놀았다 하는데 아직도 유적이 남아 있다. 어떤 이는 최치원선생의 자를 따서 대의 이름을 해운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1971년에 해운대 동백섬 정상에 <고운 최치원선생 동상> (윗 사진)앞에는 노산 이은상선생께서 지은 동상 비문이 있으며 서두에 다음과 같이 고운선생을 소개하고 있다.
「구름같이 왔다 가는 인생이기에, 자기 스스로 고운이라 자를 짓고 호도 또한 해운이라 하고서 높은 포부를 품은 채 구름같이 오갔으되 구름이 반드시 무심한 것만이 아니라 비를 뿌려 자취를 남김같이 우리 국사상 시로 학문으로 사혜를 끼쳐놓고 간 이가 계셨으니 그가 바로 신라말엽의 대시인이요, 문학자였던 최치원선생이시다.」
(아래 사진)은 <고운 최치원 선생의 동상과 휴허비>이다.
춘향제 매년 양력 4월17일
- 051-746-9984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 7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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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산37번지에 위치한 <세이암>은 조선 금석총람에 의하면 「세이암」석 자는 신의암 수중석각이라 하며 기암괴석의 절벽 아래로 바윗돌을 씻어 가는 맑은 시냇물과 좌우로 울창한 송림 등은 과연 별천지의 선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곳은 신라말 고운최치원선생께서 세상을 등지고 지리산을 주유하시던 중 신라국왕이 사신을 보내어 국정을 논하자는 말을 듣고 귀를 씻었다 하여 세이암이라 하고 돌에 새겨 후세에 전한다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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