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천주교 의정부교구 용현동 천주교회 2014년 10월 12일 한마음축제

오뚜기방송 2016. 3. 23. 11:32

[포항와이어공예ㅡ블루밍하우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천주교 의정부교구

용현동 천주교회


2014년 10월 12일


주 소 경기도 의정부시 용민로 21번길 23 (용현동)길찾기 | 홈페이지

​                                  사무실 031) 851 - 9190 FAX : 031) 851 - 9193 

 




 용현동성당 18주년기념 미사


2014년 10월 12일 오전 10시30분

























 






































































































































































































































 



 

 


 간략설명

최양업 신부의 사목 중심지이자 순교자들의 본향
주      소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471 
전화번호 (043)533-5710
팩스번호 (043)533-5721
홈페이지 http://www.baithi.org
관련기관 양업 교회사연구소    
관련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471
문화정보 충청북도 기념물 제150호

 

   


[순례의 길 떠날 때]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여정



땀방울로 뿌려진 믿음의 씨앗들


글 노희성 기자, 사진 김민수 기자


‘하느님의 종’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여정을 따라 순례의 길을 걷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분의 지상 여정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제 최양업과 성조 아브라함




최양업 신부님(1821-1861년)의 삶은 성조 아브라함의 인생 여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브람이 아버지 테라의 인도 아래 칼데아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이주하였듯이(창세 11,31), 소년 최양업은 모방 신부님의 인도로 마카오에서 신학교 생활을 합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갔듯이(창세 12,10), 신학생 최양업은 마카오 지역의 소요 때문에 필리핀으로 피신합니다.




소돔을 위하여 기도한 아브라함처럼 최 토마스는 조국을 위하여 하느님께 간청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내어놓음으로써 하늘의 별,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후손을 약속받았듯이(창세22,12-18),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와 아버지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순교를 제물 삼아 거룩한 사제가 되어 수많은 신앙의 후손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양떼를 먹이려고 목초지를 찾아 이동을 계속하였듯이, 목자 최양업은 전국의 교우촌을 찾아다니며 양들에게 천상 양식을 먹여주었습니다.




긴 여정 끝의 사제수품과 귀국




경기도 부평 교우촌에 살던 중, 정하상 바오로 등의 천거로 모방 신부님에게 신학생으로 선발된 소년 최양업은 1836년 12월 마카오를 향하여 길을 떠납니다. 8년 뒤인 1844년 12월 중국 팔가자(현 길림성 장춘시)에서 김대건 안드레아와 함께 페레올 주교님에게 부제품을 받았습니다.




부제품부터 사제품까지는 4년 4개월이라는 오랜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사제수품일인 1845년 8월 17일보다 훨씬 뒤인 1849년 4월 15일 중국 상해에서 마레스카 주교님에게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 뒤, 중국 요동의 차구(현 요녕성 장하시)에서 베르뇌 신부님(1854년 주교수품)의 보좌로 6개월 정도 공식 사목활동을 하였으니, 이것이 한국인 사제 최초의 외국인 사목입니다.




최 토마스는 귀국을 위해 오랜 기간 여러 차례의 시도를 합니다. 신학생 시절인 1842년 7월에 마카오를 떠나 귀국로 탐색을 시작하였습니다(같은 해 11월에 팔가자 도착). 1846년 1-2월에는 부제로서 조선 동북방을 통한 귀국로를 탐색하였고, 1847년 여름에는 고군산군도(현 전북 군산시 옥도면) 부근에서 좌초하여 한 섬에 상륙하기도 하였습니다.




1849년 4월 사제품을 받고, 그해 12월 압록강 하류의 의주 변문을 통과하여 마침내 귀국에 성공합니다.




목숨을 건 사목순방, 땀의 순교




길고 긴 여정과 오랜 기다림, 그리고 목숨을 건 귀국 후에 최양업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머나먼 사목순방길이었습니다. 1846년 병오박해 때 26세의 나이, 1년 남짓한 사제생활로 굵고 짧은 지상 생애를 마치신 첫 사제 김대건 신부님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첫 사제의 피와 둘째 사제의 땀, 이 모든 것이 우리 민족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의 지혜로운 안배입니다. “우리 주님의 지혜는 헤아릴 길 없으시다”(시편 147,5).




귀국 직후인 1850년 1월 전라도 지역부터 시작된 최양업 신부님의 사목순방은 6개월 동안 거의 5천여 리에 달했다고 합니다. 1861년 선종하실 때까지 방방곡곡의 교우촌 순방여정이 모두 4만 5천 리라고하니, 해마다 평균 4천여 리 땅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셨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선교여행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많은 지역이 거룩한 순례지가 되었듯이, 최양업 신부님의 사목순방으로 우리나라의 거의 전역이 거룩한 땅으로 거듭났습니다.




최 신부님 일행은 늘 비밀리에 움직여야 했습니다.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도 없었습니다. 산골 오지의 교우촌을 향하여 낮에 움직이고, 밤에 성사를 집전한 다음, 날이 새기 전에 또다시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밀고와 체포의 위험은 늘 신부님을 따라다녔고, 1860년의 경신박해 때에는 거의 절망적 상황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 신부님은 1860년 9월 3일 죽림(현 울산 울주군) 에서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님들께 보내신 서한에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이것이 저의 마지막 하직 인사가 될 듯합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계속 추적하는 포졸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희망이 없습니다.” 다행히 이 고비는 넘기셨지만, 결국 과로와 장티푸스로 쓰러져 ‘예수, 마리아’를 부르시며 1861년 6월 15일 하느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땀의 순교자’입니다. 하느님의 일로 과로를 되풀이한 끝에 체력이 소진되어 더 이상 흘릴 땀조차 없어 하느님께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최 신부님의 삶은 조국의 복음화와 민초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 봉헌된 “거룩한 산 제물”(로마 12,1) 그 자체였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쉼터




충북 진천의 동골 교우촌은 최양업 신부님에게 첫 번째 거처요 여름 휴식처였습니다. 페레올 주교님의 허락을 얻어 1850년 7월경부터 몇 해 머무르시다가, 좀 더 안전한 배티를 새 거처요 사목 중심지로 삼으셨습니다.




최 신부님은 교우촌 배티(충북 진천)에서 여름철 휴식을 취하시면서도, 교우촌 신자들을 돌보고, 순교자 행적을 수집하며, 번역과 집필 활동을 하셨습니다. 또한 신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배티 마을 중앙에 사제관 겸 소성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배티성지에는 최 신부님의 사제관 겸 소성당이 재현되어 있는데, 그야말로 소박한 초가집입니다. 집 왼편 마당에 있는 ‘십자가의 길’은 신부님의 삶을 압축해 놓은 듯합니다.




최양업 신부님 선종 150주년 기념성당 건립 예정지, 그리고 야외 제대와 성모상을 지나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무명의 6인 순교자 묘, 14인 순교자 묘가 나옵니다. 포졸들에게 쫓겨온 교우들이 마침내 하느님의 어린양처럼 피를 흘리며 고개 들어 주님께 자비를 청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최 신부님도 이들처럼 쫓겨다니셨습니다.




온갖 험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사제의 본분을 다하신 최양업 신부님에게는 조금 이른 귀천이 허락되었습니다. 피흘리는 순교 대신에, 방방곡곡 산하를 다니시며 12년 동안 뜨거운 땀으로 복음을 전하는 백색 순교의 본보기를 보여주신 신부님께서는 40년 남짓의 지상 생애를 마치셨습니다.




베르뇌 주교님 주례로 성대한 장례식을 치른 뒤, 신부님의 시신은 배론(충북 제천) 성요셉신학교 뒷산에 안장되었습니다. 신부님을 본받으려 노력했던 후배 사제들의 묘지도 그 아래쪽에 있습니다. 전 원주교구장 지학순 다니엘 주교님도 거기 잠들어 계십니다.




배론성지에는 최양업 신부님의 일대기가 묘사된 아름다운 조각공원이 있습니다. 교우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납골시설이기도 합니다. 황사영 알렉시오가 숨어 지내며 백서를 쓴 토굴, 성요셉신학교도 재현되어 있고, 지난 3월 14일에는 ‘지학순 주교 기념관’이 원주교구장이신 김지석 주교님 주례로 봉헌되었습니다.




최 신부님의 시복시성은 우리의 몫




주님께서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풍성하게 뿌리셨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스며든 신부님의 땀방울 하나하나가 그 씨앗들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그 땀방울에서 돋아난 새싹이요 줄기요 이파리입니다.




최양업 신부님을 따라 걷는 순례의 길은 다름 아닌 ‘열매 맺는 신앙인’, 곧 말씀을 듣고 깨달아 몇 곱절로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마태 13,23).




‘하느님의 종’ 최양업 신부님께 전구를 청하며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때에, 그분의 후배들인 신학생, 사제뿐 아니라 모든 신자가 그분의 삶과 가르침을 본받고 열매를 맺을 때에, 최 신부님은 시복시성의 영예 속에 교회 전체의 공경을 받으실 것입니다.


 


[경향잡지, 2011년 6월호]


청주교구 배티순교성지,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성당 봉헌
'땀의 순교자' 선교열정 배우자
시복시성 기도운동 본거지...정부와 공동으로 성역화 5개년 계획 착수



지난해 4월 15일 '하느님의 종' 최양업(1821~61) 신부 선종 150주년을 맞아 첫 삽을 뜬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 성당'이 신축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완공됐다. 또 최 신부 사목거점이자 조선대목구 사상 첫 신학교가 세워졌던 배티순교성지 성역화 사업이 이날 기념성당 완공을 시작으로 앞으로 5년간 정부와 공동 추진된다.

청주교구 배티순교성지(담임 김웅열 신부)는 15일 충북 진천군 백곡면 471 성지 초입에 세워진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성당에서 교구장 장봉훈 주교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고, 새 성전이 최 신부 시복시성과 현양을 위한 기도운동의 본거지이자 구심점이 되기를 기원했다.
 
기념 성당은 1982㎡(599.6평) 부지에 건축연면적 981㎡(296.9평), 지하 1층에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졌으며, 전형적인 고딕 양식 철근 콘크리트 벽돌조 건축물이다. 배티순교성지측은 이날 봉헌식에서 새 성전 신자석 바닥 2곳에 성지 역사를 담은 책과 DVD, 순례자 편지를 담은 타임캡슐을 묻고 100년 뒤에 개봉하기로 했다. 하늘건축사무소 정종철(리카르도) 대표가 설계했고, (주)선인종합건설(대표이사 사장 김용주 요한 사도)에서 시공했다.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을 맞은 지난해에 짓기 시작해 1년 만에 완공된 기념성당으로, 올해부터 5개년 계획으로 추진 중인 배티순교성지 성역화 사업의 첫 단추를 꿴 셈이다.


이미 지난해 6월 15일 최 신부 선종일을 맞아 최 신부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운동에 다시 불을 지핀 청주교구는 기념성전 봉헌을 계기로 '땀의 순교자' 최 신부 시복시성을 기원하고 선교열정을 기억하며 순교영성을 배우고 기도하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배티순교성지는 또 이날 기념성당 건립을 시작으로 앞으로 5년간 문화체육관광부와 충청북도, 충북 진천군 등과 함께 배티순교성지를 세계적 순례성지로 발전시키기 위한 후속 사업을 추진한다. 성역화 사업은 국비 25억 원과 도비 7억 5000만 원, 군비 17억 5000만 원, 자부담 50억 원 등 총 100억 원을 투입, 기념성당 외에 순교 박해 박물관, 신앙의 순례길이 될 '생거진천(生居鎭川) 배티 둘레길' 정비사업을 추진한다. 장차는 배티순교성지에서 진천으로 가는 길목 2㎞ 지점 삼박골교우촌 33만㎡(10만 평) 부지에 삼박골피정센터 및 기반ㆍ편의시설 등도 건립할 계획이다.

이날 봉헌식에는 교구 사제단 30여 명을 비롯해 교구 수도자와 평신도들, 이시종 충북지사와 경대수(바오로,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 새누리당)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등 2800여 명이 함께했다.

장 주교는 강론을 통해 "최양업 신부님 선종 150주년을 맞아 세워진 기념성당이 최 신부님의 시복시성과 현양을 위해 기도하는 은총과 구원의 집이 되고, 최 신부님의 삶과 신앙을 널리 알리는 기도의 터전이 되며, 최 신부님의 순교신앙과 선교정신을 교육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 청주교구 배티순교성지 담임 김웅열 신부

순교 100% 신앙의 터로 가꿀 터




- "순도 높은 신앙을 느끼고 체험하고 배우는 영성과 기도 공간으로 개발해 나가겠다"고 성지 개발 방향을 털어놓는 김웅열 신부.
 

"중요한 것은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깊은 산골에 숨어산 신앙선조들의 순수한 영성을 세속화시키면 안 된다는 겁니다."

5개년 계획으로 성지 성역화사업을 추진 중인 청주교구 배티성지 담임 김웅열 신부는 "손에 낀 금반지의 순도가 제각각이듯 신앙의 순도도 다르다"며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신앙선조들의 열심한 신앙을 되살리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무분별한 개발을 가능한 한 지양하고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는 쪽으로 성역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고 덧붙였다.
 
김 신부의 목표는 일단 신앙인들만이,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찾는 성지가 아니라 세계적 순례성지로 조성하는데 있다. 1단계로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성당을 지어 15일 봉헌했고, 2단계로 순교 박해 박물관을 지을 계획이다. 이어 3단계로 배티성지를 중심으로 15개 교우촌을 연결하는 신앙의 순례길을 정비, '생거진천 배티 둘레길'을 조성한다. 진천군민은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 나아가 전 세계인이 순도 높은 신앙을 느끼고 체험하고 배우는 영성와 기도 공간으로 개발하려는 속내가 깔려 있다.

"최양업 신부님은 국내 첫 신학생으로 선발돼 최초로 서양식 교육을 받았어요. 최초로 오르간을 연주한 서양음악의 선구자였고, 천주가사를 정리해 국문학사에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 5개도를 본당사목구로 삼아 1년이면 5000리를 걸으며 사목했던 최 신부님의 선교정신과 순교영성은 배티에 살아 있습니다. 배티는 6인묘, 14인묘가 시사하듯 무명순교자들의 본향이고, 배티신학교는 조선 최초 신학교가 세워졌던 역사적 터전입니다. 그 영성을 되살리는 게 성지 개발의 목적입니다."

김 신부는 "무엇보다 최 신부님 시복시성과 현양운동의 본거지이자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기도운동을 열심히 펼쳐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최 신부 시복시성을 기원하며 매달 첫 토요일 오후 6시 30분에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성당에서 배티 은총의 밤을 갖고 있으며, 짝수 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 2시 30분엔 라틴어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배티순교성지 성역화는 볼거리와 들을거리, 쉼거리, 먹을거리 등 네 가지 주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볼거리와 들을거리는 한국천주교회사를 복원하는 순교 박해 박물관 건립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또 쉼거리와 먹을거리는 배티교우촌을 도는 생거진천 배티 둘레 길 순례와 배티교우촌 일대 기반ㆍ편의시설 조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물론 장기적 안목으로 추진되는 중ㆍ장기 프로젝트다.
 
김 신부는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성당을 빼놓으면 아직은 시작단계"라면서도 "이땅에 신앙의 불을 놓고 한국교회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가 현양을 위한 구심점이 될 1만 명 천사운동에 기도와 후원을 보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평화신문, 2012년 4월 22일, 오세택 기자]



청주교구 배티성지,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시복 · 시성 기념성당 봉헌

‘땀의 순교자’ 시복시성 염원 곳곳에 새겨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와 배티성지 담당 김웅렬 신부가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 제대 앞에서 기도를 바치고 있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사목중심지였던 청주교구 배티성지(담임 김웅렬 신부)에 그의 시복·시성을 기원하는 기념성당이 세워졌다.

성지는 15일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현지에서 교구 사제단과 수도자, 신자 등 28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교구장 장봉훈 주교 주례로 ‘하느님의 종’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시복·시성 기념성당 봉헌식을 가졌다. 봉헌식이 열린 15일은 163년 전 최양업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날로써 그 의미를 더했다.

지난해 4월 15일 기공식을 갖고 1년 만에 완성된 기념성당은 대지면적 1982㎡, 건축면적 790.51㎡, 연면적 981.38㎡의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마련됐다.

기념성당이 들어선 배티성지는 박해시대 천주교 신자들의 비밀 교우촌이자 조선교구 최초의 신학교가 있었던 곳으로, 최양업 신부의 사목 중심지였다.

기념성당 내부 22개의 창에는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를 다룬 유리화가, 현관 로비의 5m20cm 규모 장미창에는 최양업 신부를 비롯해 하느님의 종 124위 중 성지 관련 인물 10명의 유리화가 그려져 있다. 이는 최양업 신부와 9명의 하느님의 종 순교 선조들이 하느님의 향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다.

또한 제대 위 벽에는 십자가만을 모셔놓아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본 최양업 신부의 영성을 나타냈고, 성당 입구 동(銅)문에는 길에서 살다 길에서 죽은 최양업 신부를 의미하는 구만리 길과 산천을 표현했다.

성지는 이와 함께 성당 내부에 성지역사를 담은 서적과 DVD, 순례객들의 편지 등을 타임캡슐로 봉인했다. 이 타임캡슐은 100년 후인 2112년 4월 15일 개봉하게 된다.

장봉훈 주교는 이날 봉헌 미사에서 “이제 이 자리는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의 자리이자, 최양업 신부님의 삶과 신앙을 널리 알리는 자리가 되고, 가까운 장래에는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ㆍ시성 경축미사를 드리는 역사적인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톨릭신문, 2012년 4월 22일, 이우현 기자]



청주교구,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 박물관 기공

배티, 세계적 순례성지로 거듭난다


"제가 담당하는 조선 5도에는 매우 험준한 조선 알프스 산맥이 도처에 있습니다.(…) 사흘이나 나흘씩 기를 쓰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 봐야 고작 40명이나 50명 쯤 되는 신자들을 만날 뿐입니다.(…) 저는 밤에만 외교인들 모르게 교우촌에 도착하여야 하고, 한밤중에 공소순회의 모든 것을 끝마치고 새벽 동이 트기 전에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장봉훈 주교와 김웅열 신부 등이 내빈들과 함께 시삽하고 있다.


1851년 10월 15일, 최양업(1821∼1861) 신부는 충북 진천 배티 일대 교우촌인 절골에서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교장 르그레주아 신부에게 고된 사목활동 현황을 이렇게 적어 보냈다.

청주교구는 10일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혼이 서려 있는 배티순교성지에서 교구장 장봉훈 주교 주례로 순교박해박물관(최양업신부박물관) 기공식을 가졌다. 지상 2층, 연면적 1353㎡ 규모로 건립될 박물관은 최양업 신부 일대기뿐 아니라 박해시대 역사와 신앙 선조의 삶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데서 벗어나 IT기술을 접목한 체험형 문화공간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스마트폰으로 최양업 신부 사진과 서한을 열람할 수 있고, 최 신부의 9만리 선교여정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건물 외관도 독특하다. 최양업ㆍ김대건ㆍ최방제 등 조선 최초 신학생이 건너가 사제수업을 받았던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신학교 기숙사와 부속 성 안토니오 성당을 실물 크기에 가깝게 재현한 서양식 건물이다.

박물관 건립은 배티를 세계적 순례성지로 조성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다. 청주교구 배티세계순례성지발전위원회는 진천군 및 충청북도와 함께 올해부터 5년 동안 사업비 100억 원을 투입해 최양업 신부 기념관 건립, 배티 순례길 조성, 순교박해박물관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배티 순례길 조성은 박해시대 배티 일대에 산재한 15개 교우촌의 산길을 잇는 사업이다. 배티세계순례성지발전위원회는 또 교우촌 삼박골에 피정의 집을 건립해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순례와 피정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배티성지는 성지 권역을 잇는 '생거진천배티둘레길' 등이 2016년 완성되면 연간 30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체험ㆍ체류형 성지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장봉훈 주교는 기공식 미사에서 "순교박해박물관은 최첨단 3D 장비와 관객 중심의 전시공간을 갖춘 현대식 교회 박물관이 될 것"이라며 "아울러 현대인들이 과거로 돌아가 박해시대를 체험하고, 역사 속 최양업 신부님을 만나 그 분을 뛰어넘는 신앙을 본받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티순교성지 담당 김웅열 신부는 "순례객이 들어가면 신앙적으로 고취되어 나올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을 짓겠다"고 말했다. 순교박해박물관은 내년 10월 완공될 예정이다. 배티성지는 지난해 3월 충청북도 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됐다.

[평화신문, 2012년 10월 21일, 강성화 기자]